박수근 화백 빨래터
박수근 화백의 단골 그림소개 중 하나가 빨래터이다. 그 시절은 근처의 개울에 모여 빨래하던 시절로 마을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 소박한 군상을 그리기에 최적화된 장소이다.
박수근의 빨래터 배경 작품은 대부분 1950년 이후의 작품들이다.
박수근 화백 러브스토리
빨래터는 박수근 화백이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사랑했던 평생의 반려자를 만난 장소이기도 하다. 빨래터에 있는 어머니에게 점심을 드리러 가던 중 빨래하던 소녀 김복순과 마주했고 첫 눈에 반해 결혼하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박수근 화백의 아버지가 재혼을 하셔서 춘천에서 금성으로 와서 살게 되었는데 이때 윗집에 김복순이 살았고 부유한 가정이었다. 반면에 박수근은 비교적 가난했던 아랫집 청년이었다. 이에 김복순의 아버지는 이 둘의 만남을 결사반대했고 복순의 아버지는 다른 집과의 약혼 자리를 강제로 아예 잡아버린다. 이렇게 되니 박수근은 3일 동안 물도 못마실정도로 알아누워 버렸다. 이에 수근 아버지는 복순 아버지를 찾아가서 가난하다고 업신여기지 말라 따져 물었다.
그렇게 결국 복순 아버지는 결국 결혼을 승낙한다. 신혼 여행은 금강산으로 갔다고 한다.
그렇게 살다가 평양에서 연락이 온다. 그래서 생계를 위해 신혼부부가 떨어져 지낼수 밖에 없었는데 둘은 매일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이후 김복순 여사는 박수근 화백의 좋은 그림 모델이 되었다. 멧돌질 하는 여인도 김복순 여사를 보고 그린 것이다.
이제 행복할 날들만 펼쳐질 듯 했으나 첫째 아들은 1948년 뇌염에 걸려 목숨을 잃었고 1950년 6.25 전쟁 발발로 피난길에 아이들과 함께 움직일 수 없어 박수근과 떨어지게 되었다. 이때 김복순 여사는 인민군에게 잡혀가서 고문을 당했다. 박수근은 군산쪽으로 내려와 부두 하역노동자 생활을 하게 되었다. 김복순과 아이들은 이후 춘천 피난민 대피로 도착을 하게 되지만 두 살이었던 셋째는 목숨을 잃었고 장녀와 차남만이 살아남게 된다. 다행히 박수근 가족은 이후 다시 극적으로 만나서 창신동에서 자리를 잡게 된다.
대표작 <나무와 두여인 >
박수근의 가장 유명한 나무 시리즈로 알려진 <나무와 두 여인> 은 총 6점 정도 남아있다. 그 중에 왼쪽에서 두 번째 작품이 1950년대 그린 가장 초기작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박수근 그림의 핵심 소재는 나무와 사람이다. 박수근의 나무는 항상 앙상하고 잎이 없고 휘어지거나 굽어져 있고 어딘가가 반드시 절단되어 있다. 당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표현한게 아닐까 . .. 서민들의 애환을 진실되게 담은 그림이다. 그런데 박수근 화백의 특별한 나무가 있다.
<나무 아래> 라는 작품에는 나무에 잎이 나있다. 또한 여성이 주로 등장하던 그림에 이 작품에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있다.
박수근 화백에게 안정기를 맞은 시기 1957년에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국전에 출품한 작품이 낙선되면서 크게 실의에 빠지게 되고 그때부터 음주가 늘어났고 이후 도시개발 계획으로 집이 철거되고 부동산 사기등의 과정을 겪으며 병을 얻게 된다. 결국 왼쪽눈이 서서히 멀기 시작하면서 백내장이 되어 시력을 잃게 되고 그때 그린 작품이 유동 줄넘기 하는 아이들이다.
책색을 하지 않은 유동 그림 속에는 7명의 아이들이 그려져 있다. 윗쪽에 4명의 아이들 아랫쪽에 3명의 소녀가 그려져 있다. 책색을 하지 않아 박수근의 마티에르를 온전히 느낄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 박수근 화백은 간경화 악화로 1965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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