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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안중근은 하얼빈 의거 이후 뤼순감옥에 갇히게 된다. 사형을 선고받은 안중근은 재판관에게 사형 집행 날짜를 미뤄 달라고 요청하고 동양 평화론을 집필한다. 그 당시 평화라는 단어는 굉장히 낯선 것으로 안중근의 평화 사상은 선진적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동양평화론은 어떻게 남아 전해졌을까? 현재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은 일본 국회 도서관이 소장 중인 동양평화론 필사본이다. 당시 사법성이라는 기관의 한 일본인 관리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보고 감탄을 하면서 밤을 세워 필사해 남겼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인 관리의 필사본은 17쪽의 미안성으로 전해진다. 일제가 사형 집행을 미뤄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동양평화론 내용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에는 판결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글이 아닌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15가지 이유 중 하나가 동양 평화를 깨트린 죄라고 있는데 조국의 이익만이 아닌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꿈꾸며 청, 대한제국, 일본 동아시아 3국이 서로 주권을 인정하고 국제기구를 만들어 협력하자는 공동체 정신이 들어있는 내용이다. 

 

동양평화론 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처음 쓴 것은 이토히로부미였다. 원래는 이토가 한 중일 세 나라 서구세력의 침략에 대항해서 3국이 뭉쳐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고 그 중심에 일본이 리더로써 이끌어 가야한다. 자신들의 침략을 서구의 침략을 막기위한 명분으로 삼는 글이다. 이에 대한 안중근 의사는 같은 제목으로 글을 썻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아시아가 하나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공평하고 균등해야 하며 일본의 침략은 옳지 않다고 비판한 글인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