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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Here

송파구 도서관 인조 서흔남 동상은 무엇? 송파구는 현재 롯데월드와 같은 유명한 놀이동산이 있는 활기찬 도시 공간이지만, 사실 이곳에는 병자호란이라는 가슴 아픈 역사가 지명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병자호란(丙子胡亂)**은 1636년에 일어난 전쟁이다. 그 배경은 이렇다. 앞서 1627년에 정묘호란이 있었죠. 후금(後金, 이후 청나라로 국호를 변경)이 명나라와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조선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는데, 친명 정책을 펼치던 인조(仁祖)가 이를 거절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후금이 조선을 침략한 것이 정묘호란이다. 그리고 1636년, 국호를 청(淸)으로 바꾼 청나라는 다시 조선을 침략한다. 이것이 바로 병자호란이다. 청나라 군대는 1636년 12월 9일 압록강을 건넜고, 불과 5일 만에 수도 한양을 점령하는 놀라운 속도로 진격했다. .. 더보기
명동성당 역사 명동성당은 단순한 종교적 건축물을 넘어, 한국 천주교의 발전사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격동적인 근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그 중심에 서 있던 상징적인 장소이다. 1898년에 완공되어 현재까지 12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1.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명동성당이 자리한 현 명동 일대는 조선시대 행정구역상 **'명례방(明禮坊)'**이라 불리던 곳이다. 이 명례방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평신도 주도의 천주교 도입: 한국 천주교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게 선교사가 아닌 조선 지식인 평신도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진 종교이다. 이들은 서학(西學) 연구를 통해 천주교를 접했고, 명례방은 바로 이러한 천주교 신앙 공동체가 처음 형성된 핵심적인 장소였다.최초의 세례와 순교: 조선 .. 더보기
삼순이 계단의 비밀 : 인왕산 국사당 (조선 무속신앙 이야기) 1️⃣ 한국 무속신앙의 기원 한국 무속신앙은 고조선의 단군신화에서 비롯되었다.고대에는 정치와 종교가 하나였고, 왕이 제사장이기도 하였다.‘단군’은 제사장을, ‘왕검’은 군장을 의미하였다.이것은 권력과 종교가 일치한 제정일치 사회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신라시대 2대 왕의 이름은 차차웅인데 차차웅의 뜻은 무당이라는 의미로 무당이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모셨기때문에 두렵고 높은 존재로 인식되었던 시기이다. 왕실에서는 무속신앙을 국가적인 행사로 동원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국사당이다. 2️⃣ 조선과 무속신앙 조선은 성리학 국가였으나, 무속을 완전히 배척하지 않았다.중요한 국가 행사에는 무속의식을 적극 활용하였다.대표적인 예로기우제 : 비가 오길 기도하는 제사기청제: 날씨가 맑아지길 바라는 제사재앙 방지제.. 더보기
워커힐 호텔 역사 한국전쟁과 함께한 호텔 “워커힐”이라는 이름, 단지 외국풍이라 붙인 이름일까? 아닙니다.지금은 서울의 고급 호텔로 알려진 워커힐 호텔은 사실 전쟁의 상처와 미국 장군의 이름에서 시작됐습니다.이 호텔의 역사엔 **6·25 전쟁(Korean War)**이라는 치열한 시대가 깊숙이 녹아 있습니다.지금부터 워커힐 호텔이 왜 ‘워커’인지, 그리고 어떤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지 알려드립니다.읽고 나면 이 호텔이 전혀 다르게 느껴질 것입니다. 🏞️ 워커힐의 터, 전쟁 전엔 뭐였나?워커힐 호텔이 자리 잡은 곳은 서울 광진구 광장동의 아차산 자락입니다.현재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고급 리조트이지만, 1950년대 초만 해도 이곳은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이 지역은 한강을 내려다보는 고지대이자 군사적으로 유리한 요충지로,서울 외곽을 방어하는 데 유리.. 더보기
동강 12경 중 최고, 어라연의 이름 뜻과 전설 동강 12경(十二景) 중 최고로 꼽히는 경관은 바로 어라연이다. ‘어라연’이라는 이름은 햇빛에 비치는 물고기 비늘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된 말로, 실제로 “물반, 고기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물고기가 풍부한 곳이다.이 아름다운 장소는 단순한 경관이 아니라, 생태적·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어 오랜 세월 사랑받아왔다. 🐟 '어라연'이라는 이름의 유래‘어라연(魚羅淵)’은 세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어(魚)**는 물고기**라(羅)**는 흩날리다, 혹은 아름답게 모이다**연(淵)**은 깊은 소, 물웅덩이이를 종합하면 ‘물고기들이 아름답게 흩날리는 깊은 소’라는 뜻이 된다. 고기 떼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은빛으로 빛나는 모습을 형상화한 이름이다. 🌄 동강 12경 중 어라연이 특별한 이유**동강(東江)**은 .. 더보기
영월 가볼만한 곳 : 한반도 지형 감입곡류의 신비 출처 :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407회 한반도 모양을 그대로 닮은 지형이 강원도 영월에 있다. 강과 바람이 오랜 세월 동안 빚어낸 이 지형은 단순한 자연 경관이 아니라, 한민족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특별한 장소이다. 📍 한반도 지형은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에 위치해 있습니다.특히 선암마을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그 완벽한 지형이 한눈에 들어오는데요, 드론 없이도 육안으로 그 형태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지형은 **서강(Palech River)**이 만들어낸 곡류(曲流, meander) 현상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오랜 시간 강물이 산을 감아 돌며 침식과 퇴적을 반복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지형의 핵심은 **감입곡류(ingressed meander)**입니다.보통 평지에서.. 더보기
방화대교 이야기 : 방화의 의미는 무엇? 방화대교는 단순한 교량이 아니다.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현재의 길이자, 과거와 정신을 이어주는 역사적 통로다. 🌸 ‘방화(榜花)’라는 이름의 뜻‘방화(傍花)’가 ‘꽃 옆’이라는 뜻으로 오해되지만, 실제 의미는 다음과 같다.“과거에 가장 어린 나이에 급제한, 신분 높은 합격자를 지칭하는 말.”이는 방화대교가 젊고 화려하며, 상징적 위치를 가진 다리임을 암시한다.개화산(開花山) 등 주변 자연 지형과도 어우러지며 문화와 자연이 만나는 이름이다.더보기Origin of the Name 'Banghwa'Many mistakenly think 'Banghwa (傍花)' means “beside flowers,” referencing the nearby Gaehwasan Mountain (개화산) known for.. 더보기
파고다 공원 : 탑골 공원, 서울 속 역사 여행 명소 서울 종로 한복판에 자리한 탑골공원은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지만, 정작 이곳이 품고 있는 놀라운 역사와 이야기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신은 평범한 공원을 지나다가, 이 작은 장소가 한국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 순간들의 중심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지금부터 탑골공원의 숨겨진 역사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탑골공원설명: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3·1 운동의 발상지입니다. 원래 원각사 터였던 곳으로,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 10층 석탑과 팔각정 등 문화재가 있습니다.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99주요 시설: 원각사지 10층 석탑, 팔각정, 3·1 운동 기념탑, 손병희 선생 동상, 한용운 선생 기념비 등운영 시간: 3월~10월 09:00~18:00 / 11월~2월 09.. 더보기
창덕궁 선정전 : 청기와의 비밀 📘 선정전 건립과 재건 연도1405년(태종 5): 창덕궁 건립과 함께 선정전도 처음 세워졌다.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발발로 창덕궁 전각 대부분이 화재로 소실되었다.1610년(광해군 2년): 창덕궁이 재건되었고, 선정전도 함께 복원되었다.1623년(인조반정): 반정 과정 중 궁궐 일부가 다시 불에 타면서 선정전도 피해를 입었다.1647년(인조 25년): 인조는 인왕산 아래 인경궁에 광해군이 지었던 편전 ‘광정전’의 자재를 옮겨 선정전을 다시 지었고, 이때 청기와를 얹히며 오늘날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선정전에 청기와를 얹은 이유 조선의 5대 궁궐 중 창덕궁 선정전은 유일하게 청기와를 얹은 건물이다. 이 청기와는 본래 광해군이 지은 별궁 인경궁에서 사용된 것이었다. 광해군은 서자 출신으로 .. 더보기
덕수궁 함녕전 : 망국의 황제 고종이 남긴 것은? 고종이 승하한 함녕전 1897년 창건된 함녕전은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던 해에 지어진 고종의 침전이다. 1904년에 온돌 수리 공사 중 일어난 대화재로 함녕전을 포함 덕수궁 내 전각들이 소실됐다가 같은 해 12월에 복원됐다. 이 화재로 인해 덕수궁의 거의 모든 건물이 다 불타없어졌다. 이후 고종황제는 수옥헌이라는 지금의 중명전이라는 곳으로 옮겨서 업무를 보게 되었다.함녕전에 불이 났을 때 고종이 가장 먼저 챙긴 것은 명성황후의 사진과 옥새였다. 명성황후 시해 후 덕수궁에 전화가 설치되고 아무리 멀리 있어도 음성을 들을 수 있단 사실에 놀았던 고종은 명성황후가 잠든 홍릉에 전화를 설치한 후 전화를 통해 명성황후의 안부를 물어보았고 거기 교환수가 무덤 쪽에 수화기를 대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통..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