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은 개방된 장소로 국회 1975년에 건립되었고 건립 100주년 2075년에 개봉할 목적으로 포도주를 묻어놨다고 한다. 국회에는 국회의원 300명이 있다.
국회의 역할
가장 큰 역할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헌법개정 권한이 있다. 또한 예산안 심의와 결산을 하는데 1년에 660조 원 예산을 사용하는데 300명의 국회의원들이 약 2조원씩 심사하며 국민들의 살림을 검토한다.
국회의 시초 임시의정원
일제의 지배에 항거한 3.1 운동이 일어나고 그로부터 한달 후 상해에 독립운동 대표자 29인이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을 만든다. 이것이 국회의 시초이다. 이를 통해 오늘날의 국호 대한민국을 정하고 헌법을 만들며 입법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29명의 임시의정원 의원이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다.
국회 도서관에는 무엇이?
당시 임시의정원 의장 홍진은 임시의정원 의장을 세번 역임한 사람으로 광복 이후 환국한때 임시의정원 문서 1536장을 가지고 한국으로 왔다. 그가 가지고 온 소중한 기록물이 홍진 유족을 통해 고스란히 국회 도서관에 기증됐다.
이 헌법이 오늘날까지 대한민국 제헌 헌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헌법초안이다. 일제의 해방에서 끝난 것이 아닌 다음에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되는지에 대한 지향점이 담긴 기록이다. 8년간 임시정부는 약 6000km를 옮겨다녔는데 그 과정에 이 기록들을 함께 가지고 다녔던 것이다. 의식주 여건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배 위에서 40일간 잠을 자며 고생했음에도 그 상황에서도 기록물을 목숨을 걸고 지켜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탄생
1948년 5월 10일 광복 후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다. 당시 투표율은 무려 95.5%에 달한 굉장히 높은 투표율이었다. 초대 국회가 처음 한 일은 헌법의 제정이었다. 그리고 제헌 국회의 초대 국회의장으로 국회의원이던 이승만을 선출했다. 그리고 1948년 7월 17일 제헌 헌법 공포를 한다. 이날이 제헌절이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첫발을 내딛었다.
국회 박물관에는 무엇이?
국회 박물관에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가 총망라되어 있는 곳으로 지금의 20대 국회까지의 대한민국 국회의 모든 역사를 한눈에 볼수 있다.
1, 2차 개헌
1948년 7월 20일 국회의원들의 간접선거를 통해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당선 된후 이승만은 재선을 위해 직선제가 필요하다 느끼고 1952년 부산정치파동 등을 통해 간선제- 직선재 1차 개헌을 통과시킨다. 1952년 8월 5일 직선제를 통해 재선에 성공한 이승만 대통령은 또다시 정권 연장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헌법 조항 '재선에 의하여 1차 중임 할수 있다' 는 내용이 걸림돌이 된다. 그래서 또 한 번의 개헌을 추진한다.
▷사사오입 개헌 이승만 정권 (1~3대 대통령 선거과정)
사실 이승만은 자신이 국부라 생각해 집권 초반 정당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가 개헌 때문에 파동을 겪고 나니까 정당의 필요성을 느껴 ' 자유당' 을 창당한다. 이후 자유당으로 최연소 국회의원 김영삼이 당선되고 김영삼은 이승만의 장기 집권 계획에 걸림돌이 된다.
국회 본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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