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정치의 기원은 정조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위태로운 세자시절을 보낸 정조는 후견그룹의 지원을 뼈져리게 느끼며 왕이 되었고 정조는 죽기 보름전 김조순을 불러 순조의 뒤를 봐줄것을 부탁한다. 정조 사망당시 1800년 순조의 나이는 11세였다. 정조의 반대파였던 정순왕후는 어린 순조대신 수렴청정을 하며 순조의 반대파들을 제거했다. 정조의 유시를 받은 김조순은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해갔다.
순조 1년
1801년 수렴청정했던 정순왕후가 천주교 박해령을 내려 노론의 정적인 남인(정조지지세력) 등 5백여명을 숙청한 신유박해가 일어난다. 정순왕후가 물러난 이후에는 순조의 장인 김조순 중심에 안동 김씨가 국정을 장악하게 된다. 국왕의 인사권도 유명무실해졌다. 김조순을 중심으로 한 외척들은 삼망에 모두 자신의 세력을 올리는 방식으로 자기 세력을 확장했다.
안동 김씨와 소수가문의 권력과 토지가 집중되면서 삼정은 문란해지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순조 9년에 극심한 흉년까지 겹쳐 민심은 흉흉해졌다. 결국 1811년 12월에 평안도의 농민 홍경래의 난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민란이 나라 곧곧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왕권을 바로 세워야했으나 11살에 왕위에 올라 성인이 된 순조는 장인인 김조순의 외척 세력이 포진해 있어 숨통을 죄어올뿐이었다. 이에 순조는 집권 27년 해에 효명에게 대리청정을 명한다. 당시 순조의 나이는 38살이었다. 젊은 나이에 옥쇠를 넘긴 이유는 정국을 바꿔보고 왕권을 효명세자를 통해 꾀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효명세자가 그린 왕세자입학도첩 그림..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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