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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History

브루클린 다리 :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세계 최초의 현수교 역사 (Brooklyn Bridge)

브루클린 다리는 뉴욕의 상징적 건축물로 총 길이 약 1.8KM로 뉴욕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힌다. 스파이더맨, 고질라등 영화의 단골배경으로 등장하는 다리이다. 위치는 맨해튼과 브루클린으로 가는 이스트강 위에 있고 1869년 착공하여 1883년인 14년만에 완공된 다리이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자 세계 최초의 현수교이고 완공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 

 

브루클린 다리 위치

 

현수교 특징 

브루클린 다리는 세계 최초의 현수교로 여러 개의 기둥으로 다리를 받치는 형태가 아닌 강철선에 달아서 지탱하는 방식의 다리이다. 서울 한강다리에는 현수교가 없지만 그 외 부산의 광안대교, 인천의 영종대교가 현수교이다. 그래서 영종대교를 이동할때 다리가 흔들리는 것을 느낄수 있다.  현수교의 특징은 다리를 길게 건설이 가능하고 기둥을 많이 세울 필요 없이 두 개의 주탑만 있으면 된다. 또한 상판이 높이 있어서 그래서 원래 다니던 배의 이동에 지장을 주지 않고 다리 밑으로 큰 배가 지나갈 수도 있다. 

 

브루클린 다리
현수교 특징

 

 

존 로블링 

브루클린 다리는 존 로블링가 사람들의 끈기로 지어진 다리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중반 뉴욕은 마차나 배로 주로 이동하던 시절이었다. 이스트강은 강폭이 1KM에 달하는 큰강이였고 바다로 가는 길목이라 물살도 강했다.  어느 날 존 로블링이 배로 강을 건너고 있었는데 강이 얼어붙어 중간에 갇히게 된다. 이에 존 로블링은 이곳에 다리를 건설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시장을 설득한 후, 건설자금도 모아 결국 다리 건설 사업을 따내는데 성공한다. 그렇게 1869년 브루클린 다리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존 로블링

 

그러나 공사를 시작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존 로블링은 선착장에 측량증 다가오는 배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하게 되고 이로인해 파상풍으로 사망하게 된다. 다리 건설을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보고 사망하게 되니 아들 워싱턴 로블링이 일을 이어받는다.

 

잠함 공법 채택 

주탑의 높이가 100M 가까이 되기 때문에 거대한 높은 기둥을 땅에 잘 고정해야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물속에서 작업해야 하는 상황이 쉽지 않았다. 이에 존 로블링은 잠함 공법이라는 획기적인 작업방식을 채택한다. 

 

잠함 공법

 

잠함 공법은 테니스 코트 4개 크기의 거대한 상자같은 것을 물 바닥에 뒤집어 넣은 후 압축 공기를 주입해 에어포켓과 같이 공간을 확보한 후 작업장을 강바닥에 만드는 것이다. 수면 위로 통하는 에어락을 통해 아래 위로 이동을 한다.

 

워싱턴 로블링 

당시에는 전기가 없어서 램프를 켜놓고 작업을 했고 공간도 겨우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열악한 환경이어서 일주일에 15CM 정도밖에 땅을 파지 못했다. 빨리 많이 파기 위해 다이너마트를 사용하다가 화재가 발생하는 일이 빈번했다. 이로인해 위싱턴 로블링은 급격한 기압차로 (혈관 속에 질소가 갑자기 많아지는)  몸속에 기포가 생기는 감압병(잠수병)에 걸리게 되어 반신불수가 된다. 그가 병이 걸린 것은 건설 시작한지 불과 3년 후였다. 그 와중에서도 그의 아내 에밀리 로블링이 메세지를 전달해준 덕분에 브루클린 다리의 건설은 계속되었다. 

 

 

에밀리 로블링 

에밀리 로블링은 정치인, 투자자등을 만나 외교적인 역할도 해내며 현장의 지휘자가 된다. 남편이 병이 들자 자신이 직접 공부를 하며 건설에 필요한 지식을 쌓았고 결국 남편을 대신해 현장을 지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여자가 건설 현장을 지휘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여성에게 투표권도 없고 배우는 것도 억압당하던 시절로 집에서 현모양처를 하는 게 최고의 미덕인 시절이었기 때문에 에밀리는 남편 이름으로 많은 일을 처리했다. 남편의 지시를 전달하는 것처럼했다.  이렇게 14년이 걸려 다리가 완공된다. 

 

브루클린 다리 위 로블링가 명판

 

브루클린 다리는 14년 만에 드디어 완성이 되었고 다리를 개통하는 날 에밀리 로블링은 승리의 상징인 수닭을 들고 마차를 타고 대통령과 함께 다리를 건넜고 브루클린 시민들은 거대한 불꽃놀이 축제를 다리에서 벌였다. 브루클린 다리 주탑에는 로블링가의 명판이 걸려있는데 에밀리 로블링이 제일 위에 있다. 최근에는 에밀리 로블링 플라자도 생겼다. 에밀리 로블링은 다리 건설 후에는 뉴욕대 법학 학위를 받았으며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1903년 위암으로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