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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TV 방송 리뷰

창경궁 경춘전 /창경원이 된 이유

창덕궁과 창경궁은 숲에 둘러싸여 있다. 숲에 가려져 있어 주거 환경에 적합했다. 창경궁은 성종의 할머니 정희왕후와 어머니 인수대비를 위해 지은 궁으로 여인들이 살기 좋게 만든 공간이다. 여인들이 있으니 왕은 따라가기 마련이다.  

 

창경궁 경춘전

창경궁은 궁중 암투의 주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장희빈과 인수대비(연산군이야기)가 머물렸던 곳이다. 인수대비가 살았던이 창경궁 경춘전이다. 이곳에서 인수대비는 사망했다. 그 이후에 약 200년 후 인현왕후가 기거했다가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약 70년 후 사도세자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태몽은 용꿈이었다. 정조가 태어난 곳 또한 경춘전이다.

 

창경궁 경춘전
창경궁 경춘전

 

정조도 이 건물은 아버지 사도세자와의 사연이 있는 곳이라 애착이 많았었다. 정조 즉위 후 어머니를 위해 창경궁에 자경전을 지었다. 자경전 맞은 편에는 경모궁(사도세자 사당)이 위치해 있다. 그렇게라도 부모님이 함께 하길 바랐던 정조였다. 

 

 

 

 

 

 

 

창경궁 -> 창경원으로

자경전은 고종 10년에 화재로 불타버리고 1911년 자경전 터에 일본식 건물 장서각 도서관 겸 박물관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장서각이 세워지기 전부터 창경궁은 창경궁이 아니였다. 창경궁의 정전 명정전은 모란나무를 심은 박물관으로 보루각을 중심으로 궐내각사를 헐고 반달골 2마리, 호랑이 1마리등 72종 361마리를 들여놓고 동물원을 만들었다. 1920년 서울인구의 1/10에 달하는 2만 8천명의 사람들이 4월에 창경원을 방문했고 창경원은 해방 후까지 운영되다가 1983년에 12월 31일까지 유지되었다. 

 

 

1911년 자경전 터에 일본식 건물 장서각 도서관 겸 박물관
1911년 자경전 터에 일본식 건물 장서각 도서관 겸 박물관
일제시대 창경궁 춘당지 모습
일제시대 창경궁 춘당지 모습
유원지가 된 창경궁
유원지가 된 창경궁

 

1922년 일제는 수천 그루의 벚나무 숲을 창경궁에 조성했다. 1986년 다시 창경궁을 복원하면서 동.식물원을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졌고 창경원에 많이 있었던 벗나무는 윤중로로 옮겨 심어 놓았다. 매년 4월에 윤중로에 벛꽃 축제를 하고 있다.

 

여의도 윤중로

 

 

일제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든 이유는 ? 

일제는 고종을 강제 폐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고종의 뒤를 이은 순종을 위로하겠다며 순종에 대한 배려로 창덕궁에서 거주하던 순종이 지루할까봐 유원지를 만들어 줬다는 것이다. 이에 순종은 자신이 혼자즐기는 것이 아닌 국민들에게 개방하겠다고 했다. 이에 일제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일제강점기 창경원 동물원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