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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TV 방송 리뷰

고종 아관파천 이후 상황 (을미사적은 어떻게 되었나? )

아관파천 배경

고종은 1896년 2월 11일 아관파천을 단행하고 이후 일본을 견제할수 있는 세력 러시아를 얻게 된다. 아관파천이 성공한 것에는 을미사변이 배경이 되고 있다. 명성황후의 시해 사실이 밝혀진 상황이어서 민심은 복수심으로 들끓기 시작했다.  

을미사변

 

을미사변

역사저널 393회 을미사변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한 나라의 국모가 일본인에게 무참히 살해된 사건이다. 1895년 주상전하-> 대군주 폐하, 왕비전하-> 왕후 폐하로 변경 , 1897년 황제의 나라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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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 직후 김홍집 내각이 실시한 개혁운동인 을미개혁이 시행되었고 단발령이 내려진다. 단발령 강제 시행으로 의병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의병의 확산으로 인해 진압을 위해 관군이 지방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서울의 방비가 허술해진 틈을 타 아관파천을 단행했던 것이다.  

 

고종의 아관파천 이유, 민영환 조선사절단 , 충정로 유래 (7회)

 

 

아관파천 이후 상황

고종은 아관파천 이후 김홍집 내각의 을미사적(김홍집,유길준,정병하, 조희연) 체포 명령을 내린다. 이 과정에서 김홍집과 정병하는 백성들에게 맞아 죽는다. 유길준, 조희연은 일본으로 망명한다.  

*을미사적: 총리대신 김홍집, 내부대신 유길준, 농상공부대신 정병하, 군부대신 조희연을 역적으로 규정한다.  

1897년 2월 (현재 덕수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10월 12일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게 되고 대한 제국을 선포한다. 황제라고 해서 중화질서의 주재자라는 의미보다는 국제법상의 주권자 의미로 보면 된다. 대한제국 선포는 자주독립국임을 선포한 것이다.  

고종이 환구단에서 황제 선포 후 궁으로 돌아와 명성황후를 황후로 격상시키고 황후의 장례식을 했다. 

명성황후 장례식 (유해 수습은 누가? 장례식에서 무슨일이? )

 

명성황후 장례식 (유해 수습은 누가? 장례식에서 무슨일이? )

1895년 10월 8일 조선의 국모였던 명성황후는 일본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다. [이전글]을미사변 명성황후 장례 전 명성황후 남은 유해는 어떻게 했을까? 당시 조선군 훈련대 참위였던 윤석우가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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