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orean History

창덕궁 후원 이야기 (부용지, 연경당, 신선원전 일대)

부용지 일대

처음 이곳은 그냥 언덕이었다. 그러나 15세기에 세조가 4개의 샘물을 찾아 연못을 만들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숙종이 <사정기비각> 을 만들었다. 창덕궁 후원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룬 정자가 무려 17개가 있고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정조가 부용정을 지은 이후 규장각을 설립 몇 대에 걸쳐 완성된 부용지이다. 

 

부용지 일대

 

부용정

 

부용정은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부용은 연꽃을 의미하는데 연꽃처럼 연못에서 피어오른 듯한 정자라는 의미가 있다. 부용정은 연못에서 솟은 교각에 앞으로 정자가 튀어나온 모양인데 이 난간에 걸터앉으면 마치 배를 탄 듯한 느낌이다. 

 

부용정
오른쪽 사정기비각

 

영화당 

영화당은 왕과 신하의 연회장이며 과거 시험 응시자들이 마지막으로 왕 앞에서 시험을 치르던 장소이다. 

숙종때 중건한 왕과 신하의 연회장 영화당.

 

부용정에서 내려가면 4개의 정자가 있는데 모두 모양이 다르다. 

4개의 정자
관람정은 영화 킹덤 시즌 1 촬영장소

 

 

존덕정 

존덕정이 4개의 정자 중 가장 높은 정자인데 인조 때 세워졌으며 영조, 정조가 시와문장을 남긴 정자이다. 존덕정 안에는 용이 그려져 있고 정조 대왕이 쓴 현판이 달려있다.

 

존덕정
존덕정 안 만천명월주인옹/ 천장 용무늬

 

정조대왕은 신하들를 좋아해서 신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 후 자기 자신을 만천명월주인옹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만천명월주인옹 의 뜻은 '만개의 냇물에 비치는 달의 주인 ' 으로 개울은 천 개여도 달은 각기 그 형태에 따라 비추듯이 임금은 만인을 돌봐야 한다. 각자의 얼굴과 기량에 맞게 대하는 것이 군주의 자세하는 것,  현판의 내용은 정조의 애민 정신이 담긴 글로 신하 각자의 개성에 따라 대하는 방법을 다 적어 놓은 글이다. 

 

현판 내용 

더보기

만천명월주인옹은 말한다. 

내가 많은 사람을 겪어보았는데 아침에 들어왔다가 저녁에 나가고 무리 지어 쫓아다니며 가는 것인지 오는 것인지 모르는 자도 있었다. 모양이 얼굴빛과 다르고 눈이 마음과 다른 자가 있는가 하면 트인 자 막힌 자, 강한 자, 유한 자, 바보같이 어리석은 자, 소견이 좁고 얕은 자, 용감한 자, 겁이 많은 자, 현명한 자, 교활한 자, 입만 놓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 생각은 부족하나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하는 자, 모난 자, 원만한 자, 활달한 자, 대범하고 무게가 있는 자, 말를 아끼는 자, 말재주를 부리는 자, 엄하고 드센 자, 멀리 밖으로만 도는 자, 명예를 좋아하는 자, 실속에만 주력하는 자, 등등 그 유형을 나누자면 천 가지 백 가지일 것이다. 

...........

근래와서 다행히도 태극,음양, 오행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고 또 사람은 생김새대로 이용해야 한다는 이치도 터득했다. 겁이 있는 사람에게는 방패를 주고 뜻만 높고 용기만 있는 사람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자중할 것을 가르쳐 주고 .... 

 

연경당 

조선 제 23대 왕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는 19살에 아버지를 대신해 대리청정을 하게 되고 아버지를 위해 지은 민가가 연경당이다. 효명세자는 연경당에서 3번에 걸쳐 부모님의 생일 기념 연회를 했는데 이때 효명세자가 직접 연회의 춤을 작곡을 한것이 춘행무 (어머니에게 바치는 춤) 이다. 

 

효명세자의 효심이 담긴 연경당

 

우리나라 대문은 모두 안쪽으로 열리는데 복이 집안으로 들어오라는 의미이다.
연경당

 

 

효명세자 개혁정치 : 실제모습은?

 

효명세자 개혁정치 : 실제모습은?

효명세자는 순조의 아들이다. 순조는 정조의 아들이다. 정조가 일찍 사망하면서 순조가 11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한다. 이때는 세도정권이 만들어지던 혼란한 시기였고 정조가 건강이 안 좋아졌

myvoice.wissue.net

 

 

옥류천 일대 

옥류천 일대
옥류천글씨는 인조의 글씨, 숙종이 지은 시가 새겨져 있다. 자연석을 다듬어 만든 곳으로 아래 돌길로 술잔을 띄워 보내 술을 마시게 했다.   
창의정 : 후원에 있는 유일한 초가 정자이다.

 

신선원전 

선원전은 역대 왕들의 초상화 및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왕실의 사당이라 할수 있다. 원래 선원전은 후원 서쪽에 있지 않았다. 고종이 승하하면서 일제는 선원전 부지를 민간에 매각했고 1921년 일제 통감부에 의해 창덕궁 서쪽으로 옮겨지면서 새로운 선원전 부지라고 해서 신선원전으로 통폐합되었다. 그래서 일제 시대 만들어진 창덕궁의 신선원전이 사용된 적은 없다. 

선원전
임금의 초상화들이 칸칸이 일월오병도와 옥좌가 있다.

 

 

 

 

▼정조 가계도 및 창덕궁 후원 규장각 속 정조 이야기

 

정조 가계도 및 창덕궁 후원 규장각 속 정조 이야기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37회] 오늘의 탐사지: 창덕궁 후원 주제: 정조 이야기 정조는 백성을 사랑한 임금이자 조선 제 21대 왕 영조의 손자이며 비극의 왕세자 사도세자의 아들로 아버지의 죽

jangane.tistory.com

 

'Korean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봉길 의사 이야기 1932년 4월 29일  (0) 2024.06.30
이자겸의 난 진실  (0) 2024.06.27
창경궁 이야기  (0) 2024.06.22
세종의 어린시절 및 즉위식.  (0) 2024.06.22
묘효, 시호란?  (0) 2024.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