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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합천 함벽루 : 대야성 전투 김춘추 복수극의 시작..

합천 함벽루 

경상남도 합천 황강벽에는 함벽루가 있다. 합천하면 해인사를 많이 떠올리지만 합천에는 다른 볼거리도 많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함벽루인데 이 작은 정자에 많은 문인이 찾아와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우암 송시열, 남명 조식 (1501~1572) , 퇴계 이황이 이곳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고 또한 구한말 의병장 이범직 또한 자신의 글을 이곳에 남겼다. 

 

함벽루 : 문화재자료 제 59호 
우암 송시열

 

남명 조식 글

 

퇴계 이황

 

조선 중기 성리학 발전에 기여한 인물들로 이 세사람을 빼고는 성리학, 정치, 유학을 논할수 없는 당대의 최고의 학자들이다. 

 

의병장 이범직의 글씨

 

을사늑약 당시 황제 고종을 윽발질러 나라를 팔아먹는데 도장을 찍게 만든 을사오적 중의 한 사람 이은용(이지용)의 이름도 커다랐게 새겨져 있다.  

 

 

 

대야성 위치, 흔적들

7세기 초 신라와 백제는 격렬한 영토쟁탈전을 벌인다.  642년 8월 함벽루 뒷산에서 신라와 백제의 운명을 갈라놓은 대야성 전투가 벌어졌던 대야성이 있었다. 김유신과 김춘추는 의기투합한 곳이다. 영토 전쟁이 치열하던 삼국시대 합천은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역이었다. 

 

매봉산

 

대야성 전투 복수극 시작

백제 장수 윤충이 이끄는 백제 대군단이 대야성을 총공격에 들어갔고 그때 대야성의 성주는 김품석이였는데 그의 아내 고타소로 김춘추의 딸이었다. 김춘추의 사위가 지키고 있던 성에 백제가 쳐들어 온 것이다. 윤중의 1만 군대에 성주 김품석은  성문을 열고 항복한다. 그때 김품석과 그의 아내가 죽임을 당하게 된다.  군사 요새였던 이곳이 너무 쉽게 무너진 이유는 내부에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주 김품석에게 아내를 빼앗긴 그의 부하 검일이 배신을 하고 백제와 손을 잡았던 것이다. 

 

대야성의 흔적이 남아있는 성벽 

 

김춘추는 못난 사위를 비난할 겨를이 없었다. 자신의 딸과 사위를 잃었기 때문이다. 김춘추의 슬픔은 백제를 향한 복수심으로 바뀌게 되고 선덕여왕을 찾아가 자신의 복수 계획을 말한다. 

 

▼의자왕과 김춘추의 복수극(백제 멸망 과정)

 

의자왕과 김춘추의 복수극(백제 멸망 과정)

의자왕과 김춘추의 복수극 의자왕 뜻 의자왕은 백제 31대 마지막 왕으로 의로울 의, 자해로울 자의 의자왕으로 '해동증자'라는 별명이 있다. 해동=우리나라 증자=공자의 제자이자 유학자로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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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가 나당연합을 위해 648년 당으로 떠난 시점, 김유신은 옥문관 전투에서 백제군에게 큰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 백제 장수 8명을 생포하고 대야성 전투에서 김추추의 사위 김품석과 딸 고타소의 유해를 맞교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