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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가야 시조 탄생 설화 및 나라를 넘긴 마지막 왕 이야기

가야국 시조 탄생 설화 

가야 왕국의 시조 수로왕의 탄생 설화에 등장하는 구지가는 일연의 <삼국유사>에 기록된 가야 시조 탄생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구지가 내용

 

경상남도 김해땅, 구지봉 산 아래 살던 아홉 족장들은 하늘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따라 구지가를 부르니 하늘에서 황금 상자가 내려오고 그 속에 알 여섯개가 들어있다. 

 

 

이후 알에서 깨어난 사내아이 6명이 후에  여섯 가야의 우두머리가 됐다. 그 중에서도 가야 연맹국의 중심 금관가야의 시조가 된 김해 김씨 시조 김수로왕이다. 

 

 

가야의 마지막 왕은 누구? 

그러나 주변 열강의 침입으로 약 500년의 역사를 끝으로 신라에 금관가야는 멸망하게 된다.  서기 532년 신라와 금관 가야의 전쟁에서 크게 패한 금관가야 구형왕이 나라를 통째로 신라에 넘긴다. 

 

경남 산청군 지리산 자락 왕산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구영왕 무덤

 

가락국은 고대 국가 가야를 뜻하고 양왕은 나라를 다른 국가에 넘겨준 왕이라는 뜻이다. 전 구형왕릉의 의미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의 무덤이라고 전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1798년 조선왕조에서는 공식적으로 그것이 구형왕의 무덤이라고 승인을 내려줬고 그 이후 종친들이 그곳을 구형왕릉이라고 믿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구형왕의 무덤이라고 하는 증명이 되어 있지는 않다. 그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고대국가 가야는 신흥국가 신라의 끊임없는 침략에 시달린다. 이에 백성들이 시달리니 가야의 마지막 구형왕이 서기 532년 신라의 법흥왕에게 나라를 넘긴다. 그리고 구형왕은 산청 왕산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가 죽을 때 한말은 

 

"나는 나라를 넘긴 사람이니 죄인의 무덤에 돌을 덮어라" 

삼국사기 법흥왕기


그리고 그의 후손들은  금관가야의 멸망으로 신라 진골귀족의 계급을 받고 신라인으로 살게 된다. 

김유신의 부모님 누구? 


구형왕의 아들 셋 (노종, 무덕, 무력) 중 무력은 군사적으로 활약을 펼치며 신라의 장군이 된다. 무력의 아들 서현 또한 백제와의 전투에서 여러차례 공을 세워 높은 지위에 오른다. 그러나 전통 진골와 가야출신 사이에는 신분의 벽이 있었다. 김서현은 진흥왕의 동생의 딸 만명부인과 결혼하려고 하니 그녀의 아버지는 김서현이 못마땅해 결혼을 반대했다. 이에 이들은 충청북도 진천으로 사랑의 도피를 한다. 


김유신 가계도

 

서현과 만명부인이 축복받지 못한 결혼을 해서 낳은 아들이 김유신이다. 김유신이 태어난 곳은 진천이고 이곳에서 자랐다. 김유신 태실, 김유신의 공적을 기리는 길상사 등 김유신을 기리는 곳이 진천 곳곳에 흔적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