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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종묘사직이란?/ 종묘 정전/ 종묘에 공민왕을 모신 이유

종묘사직이란? 

종묘사직을 줄여서 종사라고 하는데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고  사직은 토지신과 곡식신을 모시는 단이다. 좌묘우사로 정궁 기준으로 왼쪽에 종묘를 오른쪽에 사직단을 배치했다. 종사는 곧 국가 자체이다. 종묘사직의 제사가 단절이 되었다는 것은 나라가 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묘 정
사직단
사직단

 

종묘를 가보면 종묘대로가 있는데 굉장히 복잡하고 시끄럽다. 그러나 경내로 들어가는 순간 조용하다.  임진왜란 당시 도심의 궁궐이 모두 불타서 종묘만 남아 있었으므로 왜의 대장 평수가가 종묘에 거처하였는데 밤중에 괴이한 일이 많이 벌어졌다고 한다. 따르던 부하가 갑자기 죽는 일도 생기고 해서 왜이러냐고 부하에게 물어봤더니 어떤 사람이 이곳은 조선의 종묘로서 신령이 있는 곳이라고 하자 평수가가 두려워하여 종묘를 태워버리고 남방에 이거하였다고 한다. 

 

 

 

종묘 정전

 선조는 피난을 갔다가 서울에 와서 바로 종묘 복원에 착수했다. 그리고 이 건물은 광해군때 완성이 된다. 현재 광해군이 완성한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상태로 종묘의 정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조 건축물이다. 정전으로 101M 정도 되는 건물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길었던 것이 아니라 조선 초에는 종묘 신실 7칸을 조성하고 개성에 있던 태조의 4대조를 모시기 시작, 왕조가 이어지면서 후대 국왕을 모실 공간을 증축해 나가면서 신실을 신축하면서 같은 건물을 계속 지어나갔다. 

 

정전에서 영녕전 이동
정전에서 영녕전 이동

 

그렇다고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4대가 지나면 정전에서 영년전으로 이동 신주단지도 이사를 간다. 원칙적으로는 4대가 지나면 이동해야 되는 것이나 문제는 업적이 뛰어난 왕은 정전에 계속 안치를 하면서 불천위제사로 불려 4대를 넘긴 신주를 사당에 영구히 모시며 제사를 지냈다. 후사가 없으면 4대 이후 영녕전으로 옮겨지는 것이 보통이고 아들이 왕이면 정전에 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렇게 아들을 선호했는지도 모른다.  정전은 19개의 신실로 구성되어 있고 연산군과 광해군은 입실되어 있지 않다. 16명의 특별한 공적이 없는 짧은 재위 기간의 왕은 영녕전에 모셨다. 

 

정전에 모신 19명의 임금
영녕전에 모신 16명의 임금들

 

종묘에 가면 종묘의 내부 산실을 볼수는 없다. 매년 5월 , 11월 첫 번째 종묘 제례때 두 차례 열리고 있고 1971년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종묘에 공민왕을 모신 이유 

종묘에 고려시대의 공민왕이 자리잡고 있다. 종묘는 엄연히 이씨 사당인데 왕씨가 왜 있는 것일까? 

이유는 조선의 1대왕 이성계가 고려는 무너뜨리고 조선을 지었기 때문에 고려를 무너뜨려서 저주 받을까봐? 종묘지에 따르면 종묘를 지을때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불더니 공민왕의 영정이 떨어졌다. 그래서 떨어진 자리에 공민왕 신당을 건립했다고 한다.  사진 속의 공민왕과 노국공주는 철저하게 원나라 복식을 하고 있다. 

 

종묘 속 공민왕 사당
종묘 속 공민왕 사당

 

공민왕을 모신 또 다른 이유는 이성계를 왕으로 봉한 인물은 공민왕의 후비 정비 안씨로 당시 고려왕실 최고 어른이었다. 조선은 고려를 계승한다는 의미도 있으나 조선은 어디까지나 유교 국가로 원나라와 무관한 새 왕조 개창의 명분을 부각시키는 의미도 있다. 공민왕 신당으로 고려의 백성이 조선의 백성이 되면서 민심을 위로하는 효과가 있던 것이다. 고도의 정치적 명분이 부각된 곳이 바로 이곳이다. 

 

공민왕 사당 그림
공민왕 사당 그림 속 원나라 복식

 

종묘 도로 복원사업 

대한제국 황실은 경술국치 이후 이왕가로 격하된다. 고종은 이태왕, 순종은 이왕이라 지칭되었다. 이왕가 위에 일본 천황가가 존재하는 형태로 있었는데 당시 손종이 할수 있는 일은 종묘 제사뿐이었다. 일제 강점기 경성을 도시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창덕궁, 창경궁과 종묘 사이에 도로 개설계획을 세웠고 노란 점선이 종묘를 가로지는 도로 계획이다. 

 

 

풍수단맥설- 일제가 민족정기 말살을 위해 의도적으로 국토를 훼손했다는 설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종묘 관통선 현재의 율곡로로 불리게 된다.  일제도 단절된 모습이 껄끄러웠는지 그 위에 육교 하나를 놓았다.

 

 

2022년  8월 18일 마침내 복원 사업이 이루어져 창덕궁, 창경궁,종묘가 90년만에  연결이 되었다. 돈화문 앞의 월대는 일제시대 자동차가 다니기 위해 덮어버렸다가 최근에 복원이 되었다. 궁궐의 담장길과 함께 최근 월대도 복원했다.

 

창덕궁 돈화문 월대
창덕궁 돈화문 월대

창경궁 관천대 숙종 14년 (1688년) 에 만들어진 천문 관측기구가 있는 곳쪽에 종묘로 바로 가는 지금 길이 나온다. 길을 따라 가면 북신문 (종묘 북쪽 신이 드나드는 문)이 나온다. 궁궐 담장길과 함께 복원되었으나 상시 개방은 아니다.

 

 

 

 

설민석 버전: 종묘 자세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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