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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이야기 김시민(1차 진주대첩), 황진장군(2차 진주성 전투) 임진왜란 3대 대첩하면 한산도 대첩 행주대첩 진주대첩이 있다. 진주대첩은 1차 진주성 전투를 진주대첩이라고 부르는 것이고 잘 알려진 논개는 2차 진주성 전투의 등장인물이다. 1차 진주성 전투와는 달랐던 2차 진주성 전투은 조금은 낯설고 충격적 패배 이야기가 있다. 1차 진주대첩 1592년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면서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부산을 지나 한양으로 파죽지세로 진격하는 일본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조선군이었다. 그러나 부산에서 갑자기 일부 방향을 튼 일본 병력은 진주성으로 향했다. 일본군이 진주성을 공격한 이유 일본이 진주성을 향한 이유는 바닷길로 이동하며 물자 조달을 하려고 했던 계획은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막혀버리게 되자 호남 전라도 곡창지대를 가기 위한 길목에 진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호남으.. 더보기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조편성 관전포인트 2022년 4월 2일 새벽 카타르 월드컵 조편성이 있었다. 그룹 E조에 독일과 스페인이 들어있었고 ㅌ조 후보국이 대한민국, 일본, 모로코였다. 이 불운의 주인공은 다행히도 일본이었다. 대한민국은 H조에 속해 포르투칼, 우루과이, 가나, 대한민국 이렇게 월드컵을 치르게 되었다. H조는 결코 불평해서는 안되는 조이다. 어려운 조이기는 하지만 일본에 비해서는 절대 불평하면 되는 조편성인 것이다. 이번 관전 포인트는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만남이다. 포루투갈은 2002년 한일 월드컵때 조별리그 3차전에서 사상 최초 16강 진출을 이룬 박지성의 황금 골이 있었고 현재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감독이 포루투갈 사람 파울로 벤투로 파울로 벤투 감독과 포르투갈의 대결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월드컵에서 영국이 4개 나라로 .. 더보기
어우동의 남자들/ 그녀는 무슨 죄로 교부대시 형벌을 받았나? (간통죄가 아니였다 !) 3회 어우동은 누구인가? 15세기를 뒤흔든 인물 어우동은 1480년 성족 즉위 11년 되는 해로 정치적 안정기에 접어들던 성종 집권기 인물로 한양의 지체높은 양반집에서 태어났다. 공신(나라를 위하여 특별한 공을 세운 신하)집안인 승문원지사(현 외교부 국장급) 박윤창의 딸로 태어났다. 어우동의 이름은 박구마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는 여성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부르지 않았다. 어우동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별명이 아니었을까 추정한다. 어우동의 의미는 어우동의 남자들 태강수 이동 돈 명예 미모 모든 걸 다 가진 조선이 엄친딸이였던 어우동이다. 어우동에게 조선의 로얄패밀리 태종 이방원의 증손자 태강수 이동과의 혼담이 들어왔고 혼인을 하게 된다. 어우동은 왕가 종친과 결혼을 해서 정4품의 혜인이라는 작위를 받게 되.. 더보기
병마용갱 진시황릉의 친위군단 병마용갱이란 진시황릉에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황제 진시황의 무덤을 지키는 8000명의 진흙 군사 친위군단이 있다. 토용은 중국 역사상 최초의 실제 사람 크기로 저마다 생김새가 모두 다르다. 흙으로 형상을 빚어 구워 만든 모형으로 테라코타라고 부른다. 병마용갱 위치 진시황에 대한 많은 기록이 있지만 병마용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병마용이 발견된 곳은 진시황릉에서 1.5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어서 광화문 유물이 서울역에서 발견된 격으로 처음에는 진시황릉와 연관짓기 못했다. 조사결과 진시황과 관련된 글짜가 나오면서 진시황릉의 병마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시황릉의 면적은 여의도 면적의 13배크기다. 고대는 흙을 둥글게 쌓아 올려서 만든 무덤의 봉분은 없었기 때문에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춘추시대.. 더보기
태완이법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만든 대구 황산 테러사건 태완이법 현재 살인죄를 공소시효 폐지를 한 태완이법이 제정되었다. 태완이법은 2015년 국회에 통과 되었는데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이 개정되었다. 이로인해 2008년 8월 1일 이후 발생한 살인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폐지되었다. 성폭력에 대해서도 피해자가 만 13세 미만일때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었다. 대구 황산 테러사건 1995년 5월 20일 여섯살이던 태완이는 아침에 학원에 가는 길에 갑자기 한 남자가 태완이 머리를 잡아채고 얼굴에 황산을 뿌린 사건이다. 그로 인해 실명하고 입과 식도가 녹고 49일동안 투병하다가 결국 사망했다. 아무 죄도 없는 어린이에게 일어난 끔찍한 테러 사건 이었다. 당시 태완이가 지목한 사람이 있었으나 얼굴을 본건 아니고 황산 뿌리는 모습을 보.. 더보기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 개구리를 잡으려고 집을 나간 5명의 초등학교 어린이 다섯명이 일주일이 지나도록 집에 들어오고 있지 않았다. 91년 3월 26일 도롱뇽알을 찾으러 와룡산에 간 다섯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11년 동안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전국적으로 개구리 소년 찾기 캠페인이 벌어졌고 여러 광고로 소년들을 찾기 위한 홍보를 했다. 당시 1996년 5월까지 연인원 35만 명을 동원해 산악 수색, 검문 검색을 펼쳤지만 실패했다. 이렇게 해도 나오지 않자 북한에 갔다, UFO가 데려갔다는 소문도 있었고 피해자 아버지가 용의자로 몰리기도 했었던 사건이다. 그리고 11년만에 2002년 도토리를 주우러 갔던 동네 주민이 유골을 발견하게 된다. 4명의 아이가 함께 묻혀있었고 한구는 따로 발견이 되었다. 유골을 .. 더보기
연산군 ! 조선 역사상 유례없는 잔악한 형벌을 가했던 군주 (2회) 연산군 어린시절 연산군의 아버지 성종 조선의 9대왕 성종은 역대 왕 중에서 경연을 가장 많이 했던 왕으로 재위기간 동안 8000회가 넘는다. 성종과 중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난 적장자로 연산군이 태어났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위 그러나 1479년 6월 1일 중전 윤씨의 그날 성종은 다른 후궁의 처소로 갔고 이에 중전 윤씨가 용안에 손톱자국을 냈고 성종은 바로 다음날 윤씨를 폐서인으로 만들어 궁에서 쫓아낸다. 그리고 3년 후에 폐비 윤씨를 사약을 내려 죽인다. 연산군이 7살 되던해 성종 13년의 일이다. 그러나 연산군은 어머니의 죽음을 알지 못했고 3번째 왕비 정현왕후가 친어머니인 줄 알고 자란 연산군이었다. 폐비 윤씨가 죽고 그 다음해 연산군은 세자로 책봉된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자세한 상황을 알지 못했.. 더보기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대구시민 안전센터 체험은 이런 느낌?!) 대구 지하철 참사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는 총 289명이 사망해 역대 지하철 사고 중 가장 많은 사망자 수를 기록한 아제르바이잔 지하철 화재 다음으로 세계 2위로 기록된 지하철 화재 참사로 한국에서 철도 사고로 인명피해가 가장 컸고 세계 3대 지하철 사고로 기록된 참혹한 사건이었다. 방화/화재 원인 및 이유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방화범은 몸이 아픈 것을 비관하여 자살을 기도했으나 혼자 죽을 수는 없기 때문에 다 같이 죽기 위해서 인화성 물질을 가지고 지하철을 탔다. 가장 번화한 중앙로역에 열차가 섰을때 1079호 열차를 탄 후 불을 붙였다. 다른 승객들이 119에 신고를 해서 종합상황실에서도 상황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불이난 중앙로역으로 또 다른 열차가 진입하고 있었다. 열차가 들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