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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불국사 이야기: 석가탑, 다보탑, 가람배치 , 그렝이 공법, 구품연지...

불국사는 1995년 12월 9일 석굴암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문무왕 16년(676년) 신라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이후 수백년간 전성기를 누린다. 신라의 전성시대에 경주에 18,000 호가 살았고 초가집이 없고 모두 기와집이였다. 

 

불국사 창건 배경

불국사 창건 당시 신라의 경계가 정점에 도달했던 시기로 신라는 삼국 중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였지만 강력한 왕권과 국제교역을 통해 얻은 경제력을 기반으로 그들만의 화려하고 독창적인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까지 불국사가 가장 컸을 것으로 추정한다.  무려 80 여 종의 건물이 있었고 상주하는 승려 수가 1000~2000명 정도되는 대규모 사찰인 기록이 확인된다.  

 

불국사 전경

 

불국사는 토암산 자락에 위치한다. 토암산의 뜻은 '안개와 구름을 머금고 토하다' 라는 뜻으로 속세를 벗어난 곳에 부처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신라인들의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하다. 창건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규모가 컸으나 임진왜란 때 많은 부분이 훼손이 되고 임진왜란 전의 원래 모습으로 중수가 되지 못했다. 

 

1919년 일제강점기때 불국사의 황폐한 모습

 

불국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는 불교의 교리를 사찰 건축물로 형상화된 사례로 아시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건축미를 가지고 있다. 불국사 안에는 국보가 7개나 있다. 

 

▷불국사 창건 설화 

 

석굴암의 역사와 과학적 신비

석굴암 (Seokguram Grotto) 경주는 습기가 많은 지역으로 경주에 있는 토함산의 이름도 동해안 습기를 다 머금어서 구름,안개를 토한다는 뜻이 있고 이 산 정상에는 석굴암이 있다. 단단한 화강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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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왕 10년 토암산 중턱에 만든 인공 석굴, 석굴암 (국보 제 24호) 을 만들고 그와 함께 불교의 이상세계를 담은 절을 창건하는데 그것이 불국사이다. 불국사와 석굴암 공사가 마무리되는데만 24년이 걸렸다. 

 

불국사 가람배치 

불국사 가람 배치도

 

일주문을 지나면 부처님 세계로 들어가는 해탈교가 보인다. 해탈교를 지나면 동서남북 네 방위를 수호하는 사천왕이 있는 문이 보인다. 사천왕 발밑에 주로 악귀들을 놓는데 불국사 사천왕 발밑에는 왜구의 모습을 한 악귀들이 있다. 우리나라는 신라시대부터 왜구의 침략이 잦았고 약탈과 납치로 국민들이 매우 힘들어 했다. 왜구들은 임진왜란 당시 보물을 찾기 위해 절 곳곳을 다녔고 지장전 벽속에 숨겨둔 무기를 발견하고 승려 8명을 무참히 살해했다. 그리고 불국사를 불태웠다. 이후에 불국사 사천왕상 아래 왜구의 모양을 만들어 민족의 한을 풀기 위해 그들이 영원히 고통을 당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해탈교

 

천왕문
사천왕상: 부처님의 나라의 길목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

 

불국사는 크게 3구역으로 나뉜다. 석가모니 영역, 비로자나 영역, 아미타 영역으로 나뉘고 불국사에서는 석굴암(국보 24호) 을 포함해 총 7개의 국보가 있다. 석단 위의 공간은 부처의 나라 , 석단 아래 공간은 이승을 의미한다. 또한 두개의 세계를 연결하는 청운교, 백운교, 연화교, 칠보교가 있다. 

 

  • 국보 20호 다보탑, 
  • 국보 21호 석가탑
  • 국보 22호 연화교, 칠보교,
  • 국보 23호 청운교, 백운교
  • 국보 24호 석굴암
  • 국보 26호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상
  • 국보 27호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다리 영역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이 된 계기는 1966년 도굴범들이 석가탑에 들어있던 사리공양물들을 도굴하려다 실패를 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불국사 정비 작업이 이루어졌고 1973년까지 기초 발굴조사 후 복원 작업을 실시했다. 신라 사람들은 석가모니을 만나기 위해 청운교, 백운교를 건넜고, 극락전에 있는 아미타 부처님을 보기 위해 연화교, 칠보교를 건너 다녔다.  

국보 22호 연화교 칠보교 , 국보 23호는 윗쪽 청운교 아랫쪽 백운교이다. 문을 열고 나왔을때 가장 윗쪽이 젊은 시절 아래로 내려올 수록 노년을 의미

 

구품연지 

원래 부처님의 공간으로 가는 길은 맑은 물을 지나간다. 1971년 청운교, 백운교 아래에서 구품연지 연못터가 발견되었다. 맑은 날 이곳에 오면 불국사의 전경이 물에 아른거리고 물보라가 일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도 수구 역할을 했던 홈통이 남아있다. 연못은 발굴이 안되고 덮어 놓은 상태이다. 연못에 건물의 그림자가 물 위로 비추면 너무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랭이 기법 : 자연의 미를 중요시 했음.

 

범영루가 구품연지에 비치면 그림자가 떠있는 누각이다.  석가탑도 무영탑이라고 부른 것도 구품연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그렝이 공법 

불국사는 그렝이 공법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경주가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내진 설계를 위해 사용된 특별한 건축 기법이다. 그렝이 공법은 인공적으로 다듬은 석재를 자연석에 맞추어 깎아 서로 단단히 맞물리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공법은 석재를 접합할 때 접착제나 별도의 고정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석재들끼리 자연스럽게 맞물려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자연미를 살리면서도 견고함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렝이 공법

 

경주는 고대부터 지진이 자주 발생하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건축물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불국사 같은 대규모 석조 건축물에 그렝이 공법이 적용된 것은 이러한 지역적 특성에 따른 것으로, 건축물의 내진성을 강화하고 오랜 세월 동안 건물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이 공법 덕분에 불국사는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디며 그 아름다움과 견고함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그렝이 공법은 당시의 뛰어난 기술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자연석의 불규칙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정교하게 인공석을 다듬어 서로 맞물리도록 한 것이다. 이는 조화로운 자연미를 극대화하면서도 구조적으로 매우 튼튼한 건축물을 완성할 수 있게 했다.

 

더보기

This structure was built using the Greangi method, a clever technique designed to protect the temple from the frequent earthquakes here in Gyeongju. In this method, man-made stones are carefully shaped to fit perfectly with natural stones, locking them together without using any mortar. It’s a brilliant way to maintain the natural beauty of the stones while ensuring the temple is strong and durable.

Because Gyeongju experiences so many earthquakes, the builders needed a way to make sure the temple could withstand them. The Greangi method made Bulguksa more earthquake-resistant, which is why it has stood for hundreds of years. It’s a great example of the advanced skills of the time, combining natural stone shapes with specially crafted stones to create a structure that is both stable and beautiful.

 

대웅전 (석가모니 영역) 

다보탑

다보탑의 원래이름은 다보 여래 상주 증명탑으로 지금의 십원짜리 동전에도 있는 탑이다. 목탑과 같이 화려하고 정교하다. 다보탑은 돌로된 탑의 지붕 옥개석을 기준으로 2층 구조로 되어 있다. 다보탑 속에 유물이 있었으나 일본이 가져갔다. 일제강점기때 다보탑 보수 작업때 탑에서 많은 보물이 나오자 보자기에 싸서 자신의 나라로 가져갔다는 증언이 많다. 다보탑에 돌사자상은 원래 4개였으나 지금은 하나만 남아있다. 이것 또한 일제로 반출되어 다시 다른 다른 나라로 일부 반출되었다. 

 

다보탑 국보 20호 (다보여래부처를 상징)
다보탑 돌사자상과 옥개석

석가탑 

통일신라 전 가람배치는 마당 한가운데 하나의 석탑만 있었다. 통일 신라때 부터 쌍탑가람 배치로 변경되었다. 760년대 만들어졌다.  석가탑은 석가모니 부처를 상징하는 석가모니 부처는 소박하고 단정한 모습이고 다보탑을 상징하는 다보여래 부처는 금관도 쓰고 목걸이도 한 화려하고 장식이 많은 부처로 석가탑과 다보탑이 이 두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 한것이라고 한다. 

 

석가 여래 상주 설법탑: 화강암으로 만듬. 국보 21호 (석가모니 부처를 상징)

 

대웅전 앞에 1024년 다보탑이 중수되었고 1038년 석가탑이 중수되었다. 중수 기록을 보면 1010년대 잦은 지진으로 탑이 훼손되어 탑을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1966년 석가탑 해체복원 공사에서  2층 사리함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목판으로 인쇄한 최초의 인쇄물이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751년 경덕왕 10년에 불국사 중창 당시 봉안

 

*불교에서 절에 있는 탑속에는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있다. 부처님의 사리는 곧 부처님이 몸이고 탑은 부처님의 무덤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부처님의 사리 대신 불경을 넣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그래서 탑은 부처님의 정신을 형상화한 불상과 더불어 오랜 경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석가탑 무영탑 설화

무영탑에 대한 아사달, 아사녀 설화가 전해지는데 이 이야기는 역사적 기록에는 전해지지 않고 1938~39년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현진건의 소설에서 아사달, 아사녀에 대한 무영탑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역사적 사실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불국사고금창기

 

◆  나라별 약탈 문화재 반환 현황

 

나라별 약탈 문화재 반환 현황

2010년 11월 미국은 예일 대학교에 보관 중인 페루의 잉카문명 유물 4만 6000여 점을 반환하기로 결정한다. 연구를 이유로 대여해갔던 문화재가 100년 만에 되돌아간 것이다. 우리의 외규장각 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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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가 모셔져 있고 주변에 동물상들이 많이 있다.  코끼리, 사자, 주작, 원숭이, 봉황, 새들이 구석구석 배치되어 있다.  동물상을 배치한 이유는 문수보살은 사자상, 보현보살은 코끼리상등으로  여러 보살들을 형상화 하고 있다. 

대웅전
대웅전 내부
대웅전 처마 밑에는 16마리의 용이 다양한 모습으로 있다.



비로전

불국사 금동 비로자나불 

비로자나불은 신라 3대 금동불중 하나로 항상 지권인 수인을 하고 있다. 오른손은 불교의 세계를 뜻하고 왼손은 중생의 세계를 뜻한다. 그래서 중생과 부처는 하나이다 라는 뜻으로 어리석음과 깨달음이 같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모든 진리는 하나로 돌아간다는 약속의 의미이기도 하다. 불국사의 비로자나불의 다른 점은 수인을 반대로 하고 있다는 특징이다. 

 

비로자나불 /사리탑

 

비로전 앞 사리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놓는 곳인데 일제 시대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극적으로 되돌려 받은 것이다. 

 

 

자하문 

자하문은 연화교, 칠보교를 가는 문인데 자하문 천장에는 자연과의 조화로움을 강조한 구조물들이 보인다. 들보가 안쪽으로 휘어있는 것과 바깥쪽으로 휘어있는 것 , 문 끝쪽에 해와 달을 상징하는 둥근 원판이 있는데 들보가 내려간 쪽의 원판은 달이고 들보가 올라간 쪽의 원판은 해라고 한다. 해와 달 음양, 우주의 조화를 표현한 것이다. 

자하문 천장
홍살과 (붉은 화살) 귀면 : 붉은 색은 사악한 기운을 내쫒는 것

 

 

불국사 전각과 불상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사바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고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세계, 비로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연화장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관음전에는 관음보살을 모셔놓은 곳이다. 불교의 전각이름은 어떤 부처님을 모시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사찰의 성격에 따라 하나의 전각만 있는데 불국사는 각기 다른 부처를 모신 다양한 전각이 있다.

 

극락전 

극락전 편액 뒤에 돼지가 한마리 있다. 보통 사찰의 공포에는 주작이나 용의 형상으로 장식을 하는 극락전에 돼지를 놓은 이유는 일반 절에 뱀이 많아 뱀이 가장 싫어하는 돼지를 만들어 둔다. 또 하나는 극락전은 천국과 연관되어 있고 천국에 가는 것이 복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복과 관련된 동물이 돼지이므로 돼지를 놓았을 것이라는 설이다. 

 

극락전
아마타 부처 : 극락전의 또 다른 특별한 점은 불교 탱화가 없고 벽화가 있다는 것이다.

 

불국사에 석등은 원래 4개가 있었으나 지금은 2개 뿐이다. 대웅전에 1개, 극락전에 1개 , 일제 시대때 수탈되었다.

 

극락전

 

보통 불상은 오른손을 들고 있는데 불국사의 극락전과 비로전의 불상만 왼손을 들고 있다.  왼손은 주로 무명의 중생을 의미한다. 그러나 왜 바뀌였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진짜 불국사는 구품연지속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불국사 극락전 불상
불국사 비로전 불상

 

 

관음전 

 

불국사 관음전 관세음보살의 여러 개의 손은 보살의 자비와 능력, 그리고 중생을 구제하는 다재다능함을 상징합니다. 관세음보살은 모든 중생의 고통과 고난을 해결해주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자비로운 존재로, 천수관음(千手觀音)이라 불리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이 모셔져있다. 이 형상에서 보살은 수많은 손과 눈을 지니고 있으며, 그 각각의 손에는 다양한 도구가 들려 있거나 특정한 손 인상을 취하고 있습니다.

 

천수관음보살의 의미

천수관음은 수많은 손과 눈을 가지고 있는 보살로, 각각의 손과 눈은 관세음보살이 세상의 모든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무한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상징합니다. 각 손에는 이 달려 있어, 보살이 모든 방향에서 중생의 고통을 볼 수 있고, 그 손들로 직접 구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무한하고, 어디서든 중생의 어려움을 살피고 도울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불국사의 관음전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유는 관세음보살의 자비와 구제 능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관세음보살은 모든 중생의 고통과 기도를 듣고 그들을 구제하는 보살로, 불국사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은 보살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며 중생을 보살피는 역할을 상징합니다. 또한, 높은 곳에 자리잡은 관음전은 사찰의 건축적 배치자연과의 조화를 통해 불교 신앙과 수행의 길을 상징적으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그날 34]

 

**석굴암의 역사와 과학적 신비 (tistory.com)

 

석굴암의 역사와 과학적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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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대왕신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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