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ood & History

성계육과 조랭이떡국 이성계와 무슨 관계?

반응형

고려 말, 나라를 지키려 했던 충신 최영(崔瑩)과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 했던 이성계(李成桂)의 대립은 결국 비극으로 끝났다. 1388년, 위화도 회군을 감행한 이성계는 개경으로 돌아와 최영을 제거했다. 당시 **"두 임금이 한 나라에 함께 있을 수 없다"**며 우왕을 폐위한 이성계는, 고려의 마지막 충신 최영마저 유배 끝에 처형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최영을 잊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넋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며, 이성계를 향한 반감을 음식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음식이 바로 **성계육(成桂肉)**이다.

 

성계육과 조랭이떡국

 

 

1. 성계육(成桂肉)의 뜻과 유래

 

성계육이란 삶은 돼지고기를 뜻하며, 이는 이성계를 조롱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제사 후 최영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돼지를 삶아 먹었는데,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숨겨져 있다. 고려를 지키려 했던 최영을 기리는 제사에서 삶은 통돼지를 제물로 바쳤고, 이후 사람들이 그 돼지고기를 나눠 먹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단순한 제례 음식이 아니었다.

 



2. 왜 돼지고기였을까?

돼지가 제물로 쓰인 이유는 다름 아닌 이성계가 돼지띠였기 때문이다.
이성계(1335~1408)는 을해년(乙亥年)생으로, 돼지띠였다. 따라서 고려를 그리워하던 사람들은 돼지를 삶아 먹으며 이성계를 비웃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 삶은 돼지를 먹는 것은 곧 이성계를 씹어 먹는 행위로 여겨졌다.
  • "이성계를 삶아 먹는다"는 말이 곧 성계육(成桂肉)이라는 풍자적 표현이 되었다.
  • 고려 충신들은 이를 통해 이성계를 은밀히 조롱하고, 고려의 충절을 기리는 의식을 치렀다.

 

3. 성계육의 또 다른 의미

성계육은 고려 왕족과 충신들의 한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백성들의 저항정신이 음식 문화에 반영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조선이 개국한 후에도 고려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은밀하게 돼지고기를 삶아 먹으며 이성계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고 한다. 심지어 조선 초 일부 지역에서는 이성계를 저주하는 의미로 돼지고기를 먹는 풍습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4. 성계육과 현대의 흔적

오늘날 "성계육"이라는 표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한국인들이 돼지고기를 유독 즐겨 먹는 것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돼지고기를 삶아 먹는 문화가 발달했는데, 이는 고려 말 조선 초의 정치적 사건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설이 있다.

 

돼지 한 마리에 담긴 역사적 의미, 그리고 그 속에 숨은 고려 사람들의 한과 저항정신. 성계육은 단순한 돼지고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승자의 역사 속에서 사라진 패자들의 마지막 항변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성계과 관련된 조랭이-떡국 (전씨와 옥씨의 탄생 비화까지)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