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 일기란?
승정원 일기는 우리나라 역사 최대의 기록물로 세종때부터 작성된 기록으로 국왕 비서실인 승정원에서 정사 내용과 문서를 종합해 기록한 업무일지인데 인조(1623년) 부터 고종 (1910년) 까지의 기록만 전하고 있고 안타깝게도 광해군 때의 승정원 일기는 볼수가 없다. 총 책수는 3,243 책으로 조선왕조실록의 3배 이상의 분량이다.
승정원 일기 표지 중앙에는 기록 주체인 승정원 이름이 적혀있고 양 옆으로는 해당 기록의 년도를 표시했고 표지가 낡아 바꾼 경우도 빠짐없이 기록했다. 조선왕조 실록은 4부를 만들었으나 일일이 손으로 적은 필사본 1부만 남은 승정원 일기이다.
천년을 간다는 삼베로 표지를 만들어 기록을 후대에 오래도록 남기려는 승정원 사람들이 마음이 담겨있다.
승정원 일기는 국방상 중요 현안, 외교 전례 문제 등에 참고되었다. 승정원에는 6승지가 있었는데 각 승지마다 6조의 업무를 맡아 왕을 보좌하는 비서실의 기능을 했던 곳이다. 도승지가 최고 책임자였고 현재의 청와대 비서실장과 비슷한 직책이다.
승정원 일기는 전체 번역서를 약 5000권 정도로 예상하고 있고 2013년까지 번역된 분량은 468책이다. 2021년 기준 30%정도 번역이 되었다. AI 를 이용해 번역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고 2048년을 완벽기간으로 예상하고 있다.
승정원 일기 삭제 사건
영조가 숨을 거두기 한달 전 영조 앞에 한통의 상소가 올라온다. 상소를 올린 사람은 당시 세손이었던 25살의 정조였다. 상소의 내용은 승정원 일기에서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내용을 삭제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이에 영조는 승정원 일기에서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깨끗히 삭제되었다.
영조가 이를 허락한 이유는 사도세자에 대한 승정원 일기의 기록은 죄인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정조에게 정치적으로 부담을 줄것을 염려해서 였다. 그래서 죄인의 아들 정조가 직접 내용을 삭제할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승정원 일기 삭제가 가능했던 이유는 실록이 있기 때문에 승정원 일기 삭제가 가능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삭제 사실 자체도 기록해 역사로 남겼다는 것이다.
난중일기 내용, 의의 : 정유일기 속 명량대첩 기록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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