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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History/벌거벗은 세계사

일본 스키야키 (소고기 전골) 역사... 146-4

일본의 1200년간의 육식 금지령이 깨지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메이지 유신이다. 메이지 유신은 19세기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 체제를 복구하며 근대화를 성공시킨 일련의 개혁을 말한다. 이때 일본은 서양처럼 강해지기 위해 국가제도와 산업계의 군대 교육제도까지 개혁을 시킨다. 사소하게는 옷차림과 머리모양을 서양을 따라했고 이런 변화의 선두에 메이지 천황이 있었다. 

 

 

 

메이지 유신 뼛속까지 서구화~ (일본의 제국주의,군국주의 흥망성쇠 역사)

↓메이지 유신 배경 요시다 쇼인 정한론, 존왕양이 조선 침략 (36-1) 왕정복고-> 메이지 유신 시대 시작 시모노세키 전쟁 후 천왕이 천 년간 기거하던 교토를 떠나 도쿄 입성하면서 왕정복고 : 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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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따라해도 극복할수 없는 신장의 차이가 있었다. 당시 일본 남성 평균 신장은 155cm였다. 반면에 미국 남성의 평균 키는 약 173cm였다. 참고로 당시 조선 남성의 평균 키는 약 161cm 로 조선보다도 작았다. 

 

 

이에 일본은 자신들의 체구를 키우기로 마음먹고 음식을 서양식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이때 일본 정부는 쌀과 생선 채소 위주였던 식단을 육류 위주의 서양식 식사로 변경했으나 육식에 대한 일본인들의 거부감을 깨기에는 쉽지 않았다.  이에 천황이 직접 육식 장려운동에 나섰고 1일 2잔의 우유를 마신다고 홍보를 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의 주도로 다양한 소고기 장려 정책이 실시되었는데 첫 번째가 소고기 생산 산업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  두 번째로 낙농업을 위한 홋카이도 개척사업을 실시한다.  이를 위해 삿포로에 농업대학을 설치하고 매새추세츠 농업 대학 학장을 지낸 미국 교육자 윌리엄 S . 클라크를 교장으로 임명했다. 

 

 

 

스키야키의 탄생

그는 홋카이도 임야에 농원을 개설 미국식 축사를 도입시켰다. 또한 익숙하지 않은 서양식기의 사용법은 육식의 두려움을 강화시킨다고 판단해 소고기라는 재료를 자신들에게 익숙한 요리와 접목시킨 요리를 찾기 시작한다. 

 

 

초기 스키야키 규 나베 

그것이 바로 스키야키였는데 초기의 스키야키는 지금과 조금 달랐다. 바로 규 나베로 깍둑썰기 한 소고기 전골은 현재 요코하마에 오직 한 집 뿐이다. 

 

예약 난이도 극강 집

 

이 소고기 전골은 소고기를 꼬치에 꿰어 팔던 요코하마의 한 요리사에 의해 개발된 것으로 소고기를 굽지 않고 끓여 먹을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가 소고기를 끓여 보니 익숙하지 않은 육향이 발생하여 철냄비에 고기 냄새를 잡아 줄 파와 된장을 넣고 졸여 먹는 요리가 탄생한 것이다. 서양의 식재료 소고기를 일본식으로 요리한 최초의 일양절충 요리였다. 

 

이 소고기 전골은 익숙한 양념과 맛으로 일본 사람들에게 인기 폭발이었다. 게다가 당시 서양식 식사보다 약 80배나 저렴했다. 복잡한 서양 식기가 없어도 젓가락만으로 식사가 가능했다. 이 소고기 전골이 교토, 오사카가 위치한 관서 지방으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이름의 스키야키로 탄생한다. 

 

 

스키야키 뜻

스키야키의 이름은 관서지방에서는 소고기가 보급되자 소고기의 부정함이 오염될까봐 냄비 대신 흙을 파는 농기구였던 '스키 ' 의 금속 부분을 떼어내서 소고기를 구운 것이다. 그래서 '스키야키' 이다 

 

 

 

관서식 스키야키 

관서지방 쿄토의 스키 야키는 얇은 냄비에 설탕을 깐 뒤 얇게 썬 소고기를 구워서 날달걀에 찍어 먹는 관서식 스키야키로 먹었다. 소고기 육향에 익숙하지 않았던 일본 사람들은 육향을 중화시키기 위해 날달걀에 찍어먹었다. 

 

이렇게 소고기 전골이 관서 지방으로 오면서 스키야키가 되고 다시 관동 지방으로 넘어가면서 조리법이 달라진 스키야키가 된다.

 

관동식 스키야키 

관서방식과는 다르게 육수에 실곤약 두부 대파 표고버섯을 넣고 보글거리는 육수에 소고기를 투하한 후 간장 육수를 머금은 전골 스타일이다. 관동식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달걀 노른자에 푹 담가 먹는다. 

 

 

이렇게 스키야키로 일본의 육식이 자리잡아 가자 소고기 소비량도 증가하게 된다. 불과 20년 사이에 소고기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후 일본인들은 일본인 입맛에 맞춘 다양한 일양절충요리가 탄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