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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TV 방송 리뷰/태종 이방원

태종 이방원 조선 역대 임금 중 후궁을 가장 많이 들인 이유 22회

이방원은 즉위식을 하고 원경왕후와의 기싸움 끝에 민씨를 왕비로 책봉한다. 22회는 원경왕후의 세력인 외척을 제거하기 전 상황을 그리고있다.

 

22회 주요 내용 

 

원경왕후는 나무처럼 아무것도 하지 말고 태종 이방원의 신하가 되라는 요청을 끝까지 거절하고 궁궐로 아이들을 앞세워 들어왔다.

 

 

또한 신하들로 하루 빨리 왕비를 책봉하라는 고하니 이방원은 마지못해 민씨를 왕비로 책봉한다. 그러나 이후에 이방원은 왕비를 찾지않고 후궁을 들이기 시작한다. 심지어 원경왕후의 시녀를 후궁으로 삼아버리면서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또한 왕이 정사를 돌보지 않고 후궁을 들이는 여색에만 빠져있다는 상소를 올린 이를 추궁해 그의 입에서 배후로 여흥부원군 민제 대감이라는 이름이 실토되면서 외척 제거를 위한 밑거름을 마련한다.

 

 

태종은 왕위에 오른 2년부터~(아들 세종 4년) 50대 후반까지 20년동안 후궁을 끊임없이 들였고 그로 인해 원경왕후를 포함해 부인이 19명이었고 자식은 총 31명으로 조선 임금 중 가장 많은 후궁을 둔 임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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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에게 신덕왕후 강씨가 있었다면 이방원에게는 원경왕후 민씨가 있었다. 정세를 판단하는 통찰력으로 이방원을 왕위에 올리지만 원경왕후는 이후의 결말이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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