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orean History/@ Here

흥선대원군 별서 석파정

 

흥선대원군(1820-1898) 의 호는 석파로 돌석, 언덕 파 돌 언덕이라 는 뜻의 석파정은 인왕산 북동쪽 바위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별장 (=별서)으로 수려한 자연 경관 속에서 그림을 가까이 했던 곳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흥선대원군 난초 그림의 스승으로 흥선대원군이 되기 전에 그림을 좋아하던 이하응이 추사에게 난초를 배웠다. 

 

석파 이하응의 석란도
소수 운련암자각


소수운련암 물로 둥지를 틀고 구름으로 발을 삼은 암자라는 뜻으로 석파정을 짓기전 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는 바위로 바위에 새긴 글귀는 옛날부터 이곳이 아름다웠다는 것을 말해주는 시적표현이다. 

650년 추정의 서울시 보호수 소나무: 천세송 천세를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으로 서울특별시 지정보호수 제 60호로 지정

 

원래 석파정의 주인은 철종때 세도가 안동김씨 김흥근이었다. 그런데 흥선대원군이 이 집 빼어난 풍광에 마음에 쏙 든 것이다. 수차례 김흥근의 별서를 매매 제안을 했으나 이를 거절하자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아들 고종을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가게 했다. 당시 조선은 왕이 머문 곳은 성역이라고 해서 임금이 묵고 가신곳은 신하가 살수 없다하여 국가에 헌납하도록 한 것이다.  

사랑채
사랑채 안

석파정은 원래 8채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현재는 안채, 사랑채, 별채 그리고 석파정만 남아있다. 사랑채는 바깥 주인이 머물며 외부 손님들을 맞이하던 공간이다. 

 

별채: 고종이 머물렀던 장소
고종이 머물렀던 방
삼계동자각

석파정 이전에 삼계동정자라고 불리었음을 알수 있는 암각으로 이 곳에서 3개의 시냇물이 만난다 하여 삼계동이라 이름지었다. 큰 거북이 형상의 바위에 삼계동 각자를 새겨놓았는데 거북이는 장수를 의미한다.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권력을 상징하는 기린을 수놓아 흉배로 사용했는데 실각이후 거북 흉배로 바꾸었다고 한다. 

 

석파정의 원래 이름은 유수성중관풍루 : 흐르는 물소리 들으며 풍광을 바라보는 정자 라는 뜻

 

원래 석파정은 정자의 이름인데 석파정은 중국식으로 지어진 것이 특징으로 들어가는 길이 휘어져있고 정자도 입식인 것이 특징이다. 그때 당시 현대식이라고 받아들여 지은 것이 중국식인 듯하다. 전통적인 한국의 정자와 달리 바닥을 화강암으로 마감, 기둥과 꾸밈벽과 지붕을 청나라 풍으로 꾸몄다. 

 

너럭바위, 코끼리 바위 : 흥선대원군이 석파라고 호를 지은 것은 이 바위를 보고 지은 것이다.

 

석파정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너럭바위는 형상이 코끼리를 닮았다고 하여 코끼리 바위로도 불린다. 아이가 없던 노부부가 이 바위에서 소원을 빌어 득남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소원바위라고 전해시기고 한다. 인왕산의 풍광을 잘 볼수 있는 장소이다. 

 

▼ 석파정 흥선대원군 별장으로 선택한 이유는..

 

석파정 흥선대원군 별장으로 선택한 이유는..

[선을 넘는 녀석들 55회] 오늘의 탐사지: 석파정 주제: 흥선대원이 사랑한 석파정 흥선대원군의 별장 석파정 서울 부암동에 위치하고 있는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유명한 석파정 입구 앞 대문에

jangane.tistory.com

흥선대원군은 어떻게 고종을 왕위에 올릴 수 있었을까? (흥선 대원군 업적)

 

흥선대원군은 어떻게 고종을 왕위에 올릴 수 있었을까? (흥선 대원군 업적)

[선녀들 리턴즈 55회 중] 주제: 흥선군 이하응 흥선대원군 되다. 흥선군 이하응 흥선대원군은 원래 왕가와는 먼 친척 관계였다. 정조의 배 다른 동생이 있었는데 후사가 없었다. 그래서 왕족 중에

jangane.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