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orean History/벌거벗은 한국사

대윤 vs 소윤 43-2

이전글 -> 문정왕후는 어떻게 중종의 3번째 왕비가 되었나? 

 

김안로 추출

문정왕후에게 자식이 없다가 3명의 공주 출산 후 마침내 경원대군이 탄생한다. 그러나 인종의 세력은 경원대군을 경계하기 시작하고 이 세력의 가장 우두머리가 김안로였다. 이에 그들은 문정왕후의 남동생들인 윤원형과 윤원로가 유언비어를 퍼뜨린 하고 중종에게 고하고 중종은 윤 씨 형제를 파직하고 유배를 보냈다. 실상은 가짜뉴스로 윤 씨 형제를 내쫓으려 했던 김안로의 계략이었다. 

 

그러나 윤원로가 중종을 몰래 찾아가 김안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이에 화가 난 중종은 다음날 김안로를 유배를 보내고 사약을 내렸다. 사실 중종은 김안로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런 김안로가 문정왕후의 측근들과 갈등을 일으키자 선을 넘었다고 생각해 이 같은 조치를 한 것이다. 

 

 

대윤 VS 소윤 

김안로 추출 이후 윤 씨 형제들의 세력은 커지기 시작한다.  이때 문정왕후와 윤 씨 형제를 예의주시한 또 다른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윤임이었다. 김한로 축출 이후 인종의 보호자로서 세력을 형성한 윤임은 둘째 왕비였던 장경왕후의 오빠이자 세자의 외삼촌이었다. 윤임은 어떻게든 세자를 왕위에 안전하게 올리려 했다.  그렇게 세자 인종 세력과 경원대군의 세력 두 개의 파벌로 조정은 나뉘게 된다.

 

 

동궁 화재 사건

두 외척세력은 같은 파평 윤 씨 가문으로 편의상 세자 인종 세력을 클 대자를 사용해 대윤, 경원대군 세력을 작은 소자를 붙여 소윤이라 불렀다. 점점 세력을 형성하던 두 세력 있다. 그러던 1543년 1월 동궁에 의문의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종은 불길을 피해 화를 면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대윤과 소윤은 서로를 화재의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갈등이 증폭되었고 이에 문정왕후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는 상황이었다. 동궁 화재 사건으로 대윤과 소윤의 갈등은 정점을 찍는다. 

 

 

인종 조선 12대 왕 등극

그리고 1544년 중종이 승하하면서 인종은 제12대 왕이 된다. 이에 문정왕후는 권력을 잡은 대윤파가 경원대군을 죽이지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11살인 경원대군을 지키기 위해 문정왕후는 인종에게 원망을 쏟아낸다. 

 

인종의 인은 어질 인자로 어머니 문정왕후에게 복수심이 아닌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인종은 문정왕후를 달래기 위해 소윤파 윤원형을 승진 지켰다. 정 3품 도승지였던 윤원형은 종 2품 공조참판이 된다. 인종은 기록에 천성이 순하고 착하며 효심이 깊다는 말이 많이 언급되어 있다. 길러준 어머니 문정왕후에게 싫은 티를 낸다거나 소윤세력을 제거하려 한 행동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인종이 즉위한 지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인종이 극심한 설사를 하더니 뼈가 앙상하게 드러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었고 이에 대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인종에게는 후계자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종은 5일 후에 승하하면서 경원대군에게 왕위를 넘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