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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Here

용산 미군 기지 투어

드래곤 힐 호텔 

서울 시내 한복판에 미군 기지가 있었다.  용산 기지의 면적은 여의도의 절반 규모로 축구경기장 200개 크기의 기지였다.  그러나 지도에서 확인하면 용산 미군 기지는 표시 되지 않았다. 반환된 용산 기지가 개방되었다.

 

드레곤 힐 호텔: 용산 1990년 완공되어 미군과 가족 관계자 등 이용 가능하다.

 

아래 하얀 건물은 미군이 이곳의 주인이 되기 전 일본군 초소였다. 현재 드레곤 힐 호텔 자리는 일본 조선군 사령관 관저가 있었던 자리에 호텔을 지은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일본군 초소와 돌기둥이 아직 남아있다. 

 

 

용산기지 안에는 곳곳에 문인석과 동자상들이 남아있다. 이것은 무덤을 지키던 석상들인데 옛날에 조선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는 증거이다. 

 

사우스포스트 

용산 미군기지는 메인 포스트와 사우스포스트로 나뉜다. 

 

사우스포스트 벙커 

용산 군사시설 중 제일 상징적인 곳으로 일제 시대 일본 조선군 사령부가 작전실로 사용하던 사우스포스트 벙커이다.

 

사우스포스트 벙커

 

 건물이 튼튼해 광복 이후에도 계속 사용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미군은 철수를 한다. 그 후에 대한민국 육군본부 정부 작전실로 사용되었다. 이때 박정희, 김종필 등이 근무하고 있었다. 5.16 군사 정변의 핵심 인물들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38선 이남으로 북한군이 쳐들어왔다. 한국전쟁의 첫 타전을 인지했던 장소가 사우스포스트 벙커이다. 

 

 

 

위수감옥 

일본군 감옥: 위수 감옥으로 군 관련 범죄자들을 수감하던 곳이다. 

 

이곳은 원래 일제시대 악명높았던 서대문 형무소가 세워진 직후인 일본군 감옥으로 1909년 9월에 완성되어 약 4.8m 높이의 붉은 철근 콘크리트 벽돌 담장으로 이루어져있다. 담장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탄흔을 볼수 있다. 해방 이후 한국군 육군형무소로 사용되었다. 

용산 기지 위수 감옥

 

위수감옥은 평택 이전 전까지 미군 의무부대가 사용했던 공간이다.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고 당시 일본군 헌병 보조원이었던 강기동은 헌병대에 구금 중이던 독립운동가들의 탈출을 돕게 되고 자신도 의병으로 전향한다.  그리고 이후 함경남도 원산에서 붙잡혀 서울로 압송된 뒤 그는 헌병 보조원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위수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사형당한다. 해방 이후 백범 김구를 죽인 안두희도 이곳에 수감되었는데 당시 그는 현역 육군 장교출신이였기 때문이다. 

 

시구문 

감옥 뒷편으로 시신이 나가던 시구문을 시멘트로 덧발라 놨다. 

 

미8군 클럽 

1950년대부터 재즈, 팝, 로큰롤 등 다양한 음악을 선보인 미8군을 위한 공연이 열린 공간으로 전국의 미군 클럽 중에서 미 8군 클럽이 가장 큰 무대였다. 

 

미 8군 클럽
옛 미8군 클럽의 정문

 

낯선 땅에 온 이방인들에게 즐길 거리가 필요했고 젊은 군인들을 위해 미국의 많은 아티스트들이 와서 위문  공연을 했었다. 당대 최고 스타 마를린 먼로가 신혼 여행 중 장병을 위해 방한을 했었고 전설의 아티스트 루이암스트롱 등이 내한했다 .

 

1963년 내한 당시 루이 암스트롱 한복을 입고 있다.

 

신문물을 앞세운 미8군 무대는 한국 대중가요의 초석이 된다. 서울 안에서 미국 문화를 배울 수 있었던 한국 대중문화이 요람이었던 곳이다. 

 

 

용산 메인포스트 

메인포스트 로드맵

 

JUSMAG-K (주한 미합동군사업무단)

용산 메인포스트의 필수 코스인 JUSMAG-K (주한 미합동군사업무단) 건물로  고급스럽고 이국적인 외관이다. 1908년에 지은 건물로 식민시대 일본군 장교 숙소를 시작으로 지금은 주한 미합동군사업무단이 사용하는 건물이다. 

 

과거 일본군 장교 숙소

 

1946년 미소 공동위원회의 회담이 덕수궁 석조전에서 열렸는데 그때 소련군 대표단 수행원 숙소로 쓰인 건물이기도 하다. 

 

한미연합군 사령부 

1978년 한미연합군 사령부가 창설되어 한국군과 주한 미군을 통합, 지휘하는 기관으로 한국 방위력 증진을 목적으로 양국 정부의 합의로 창설되었다. 

한미연합군사령부 

 

미 8군사령부 

한미연합군 사령부 맞은편에 미8군 사령부 건물이 있다. 평택 미군 기지 이전 전까지 일본군 보병 병영을 재활용한 것이다. 미8군은 1944년 미국 본토에서 창설된 미군 부대로  6.25 전쟁 직후 일본에서 한국으로 배치되며  인천상륙작전 후 한국 주력 부대로 활동하고 있다. 전쟁후 계속 한반도에 주둔하며 대한민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보안관 역할을 하고 있다.   

미 8군 사령부
미 8군 사령부 뒷편

 

미8군 사령부, 주한미군 사령부, 도쿄에 있던 UN군 사령부도 이 건물에 들어오게 된다. 이 건물에는 별모양의 표시를 볼수 있는데 제국주의 시절 일본 육군의 상징이다.  

 

일본군 특유의 상징 문양
일본군 보병 연대 막사

 

용산 일본군 기지는 일본군이 먹고 자고 훈련하던 곳이며  대륙진출의 야망으로 가득찼던 곳이다. 

 

보행교 

1937년 , 1941년 일본군은 중국, 미국 진주만까지 공격했고 이때 조선인을 징병했다. 한미연합 사령부 뒤에 위치한 다리로 일제시대 한미연합 사령부 앞 운동장에서 조선인을 징집해서 이 다리로 20대 초반의 조선인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만초천이 한강으로 흐른다. 만초천의 길이는 7.7km

 

만초천은 청계천과 비슷한 운명으로 1968년 기지 밖에 있던 만초천 지류를 복개하면서 도로를 만들자 시민들의 눈앞에서 사라지게 되고 기지 안에 있던 것은 사람들이 볼수 없었기에 용산 기지 내에서만 만초천의 지류가 그대로 남아있다. 

 

조선 시대 용산의 위치는 사실 마포구 원효로 일대를 용산이라 불렀다. 그러나 러일 전쟁이 벌어지고 지금의 용산에 일본군이 옛 둔지산 자락에 군사기지를 만들면서 일본에 의해 신용산이라 불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