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화파 대표적 인물 최명길이 있다. 척화파의 대표 인물 김상헌이 있다. 인조 옆에 주화파의 특징은 실무가 중요한 현실주의자들이었고 청과의 전쟁을 막아 현실적 피해를 줄이는데 주력하고자 했던 세력이었다.
반편 척화파의 특징은 명분이 중요한 원리주의자 세력으로 조선의 입장에서 어떤 게 정의고 합리적인 건지 고려했던 세력이었다.
당시는 국제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수 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라의 존망과 직결된 문제를 두 세력모두 쉽게 결정할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는 사이 왕을 지키기 위해 남한산성으로 오던 근왕군들은 패배를 이어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혹한기까지 이어져 줄줄이 병사들은 병들고 얼어 죽어갔다.
광교산 전투
그러나 모든 전투에서 패한것은 아니다. 병자호란 속에 손에 꼽는 대승 광교산 전투가 있다. 전쟁의 필승 요건은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싸우는 것인데 이전까지는 청군이 원하는 장소에서 이루어졌으나 광교산 전투는 조선군이 먼저 방어진지를 설치하고 청군이 밀집되어 올수밖에 없는 지형이었다.
조선군이 강점 수비이다. 당시에도 알아주었던 조선의 활 솜씨 덕분에 총도 잘 쐈다. 기록을 보면 몽골군과 겨루어도 이길정도였다. 임진왜란 이후로 조선군의 사격 실력이 상승되어 있었고 청 적장이 조선의 패잔병의 저격에 죽었다.
청나라 장군이자 누르하치의 사 양구리의 죽음은 청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러나 전세는 이미 청에 기울어져 있었고 홍타이지는 최후통첩을 보낸다.
주화파와 척화파 최명길 김상헌은 홍타이지가 온 후 화친문서를 쓰는 상황에도 대립한다. 척화파는 오랑캐는 짐승 그 자체였기 때문에 오랑캐에 화친할 바에는 죽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인조는 항복문서를 작성하지만 김상헌이 이 문서를 찢어린다. 그리고 최명길이 항복 문서를 다시 작성한다.
청나라 군은 조선을 직접 지배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왕의 항복만 받으려 했기 때문에 왕이 있는 남한산성을 직접 공략하는 대신 왕족들이 피신해있는 강화도전면 공격을 준비했던 것이다.
이때 길채가 원손을 구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록에는 신하들이 피신시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인조는 마침내 항복하면서 삼전도의 굴욕을 겪는다. 그리고 병자호란 이후 정축화약을 맺는다.
삼궤구고두례 = 삼배구고두례 진짜 의미는? (삼전도의 굴욕 이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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